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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지역운동의 버팀목이 되고자 했던 사람!
이제는 홍성에서 새로운 운동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사람! 시민운동가 박상우!
오랜만에 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잔잔한 그리움으로......
1. 홍성으로 삶의 터를 옮겨간 지 벌써 3년째가 되가는 것 같은데...홍성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모두들 평안하시죠?
충남 홍성군 동편에 자리잡은 홍동이라는 평범한 동네에서 터를 잡은 지도 벌써 햇수로는 4년, 2년 4개월 가량의 시간이 흘렀네요. 돌아보니 적지않은 시간이 가긴 갔네요. 처음 홍동에 올때부터 시간에 쫓기지 말고, 삶에 허덕이지 않도록 느긋하지만 우직하게 가보자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아직까지도 내세울만한 변변한 일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사실 저는 당신 직업이 뭐요? 라는 질문이 가장 난감하답니다. 늘 속마음은 ‘난 활동가!’라고 답하며 위안을 삼고 있는데도, 사람을 만나면 명함 한 장을 건넬 무언가가 꼭 필요한 것이 세상사인 것은 아닌지.![]()
최근까지 저는 30년 역사를 가진 풀무생협이라는 사업장에서 총괄팀장이라는 직함을 얻어 밥벌이를 해오다가 며칠 전 퇴사를 했지요. 지금은 작년말에 신축한 소포장센터라는 예비)사회적기업을 컨설팅하는 일에만 비상임으로 관여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2개의 사무실을 들락날락 거리고 있어요. 소포장센터 외에 마을활력소 임시사무실이 그것인데요. 지난해 마을 토론회와 마을 총회 등을 거쳐 공론화된 ‘지역센터 마을활력소’라는 중간지원조직 설립 준비가 한창입니다. 올해 4억원을 들여 아담한 공간도 만들어질 예정인데요, 요즘 이와 관련된 일에 가장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고 있는 듯 합니다. 이제서야 지역 일을 거드는 ‘일꾼’이라는 명함 한 장이 막 새겨지고 있는 중이랍니다.
2. 홍성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그리고 가장 힘들었을 때와 행복했을 때는?
처음 귀촌하고 1년간은 막 돌 지난 둘째아이를 돌보면서, 뒷 밭에서 밭일도 배우고, 닭도 키워보고, 농업농촌에 관한 책도 주섬주섬 읽어가며... 흔히 남들이 말하는 전원 속에서 몇평 안되는 텃밭과 씨름하며 딸년, 아들놈과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치 번잡한 세상과 단절하고 싶었던 양, 혼자만의 사색과 독고적 삶을 일부러 즐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좋아하던 술 총량도 절반 이하로 줄었고, 몸무게도 10kg가량 자연 다이어트되고...
아직까지도 지역민이라 불리기에는 워낙 짧은 시기인지라 뭐 가장 기억에 남는 일, 힘들었던 일, 행복했던 일이 뭐다 라고 답하기가 참 쑥스럽네요. 아마도 다 같지 않을까 싶어요. 그때그때 활동했던 일들이 모두 기억에 남고 또 아쉬움으로 남기도 하고... 또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어떤 때는 행복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더러 힘들기도 하고. 모두 다 그렇지 않나요! 돌아보면 저 개인적으로는 그 처음 1년이 새로운 것을 접하느라 가장 행복하기도 했고, 적응하느라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한 이불을 덮고 살아주고 계신 분(?)은 그때가 가장 힘들었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 드네요. ^^*
3. 오랫동안 떨어져 살던 가족들이 함께 살고 있는데, 가족들과 살면서 느끼는 일상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뭐 별다른 것이 있겠습니까? 가족과 함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행복이겠지요!
오랜 기간 떨어져 각자의 영역에서 제 역할을 해오던 아내하고는 두 번 결혼했다고 생각하고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가 맞춰가는 과정에 있고, 아이들에게는 좋은 아빠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 뿐이지요. 나의 딸, 아들도 태어난 준 것에 그저 감사하며 살고 있답니다. 아무리 일이 치여도 꼭 주말에는 밀린 밭일도 하고, 아이들과 여행을 가거나 온종일 놀아주곤 했는데... 요즘 들어 아이들 얼굴 보기가 힘들 정도로 밖으로만 쏘다니고 있답니다. 감당할 만큼 즐겁게 일해야 할 터인데 일에 치이고 사는 것은 대전이나 홍성이나 변함이 없는 듯 하네요. ^^*
4. 홍성에 국내최대의 축산단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구제역 상황, 이로 인한 지역과 농민들에 미치는 영향, 이를 바라보는 심정은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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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크고 작은 모든 모임이 끊어졌고, 견학을 오려는 사람도 반기지 않고 타 지역에 가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구제역 의심 신고만 있어도 마을 진입로가 통제되기도 하지요. 마치 누군가에게 전가할 만한 책임과 꺼리만 발생한다면 맞아죽기 십상일 겁니다. 사실 조금 먹고 사는 농가가 축산 농가이지요.
하지만 1~2마리를 키우는 농가들의 마음들은 어떠할 것 같습니까? 매일매일 가족처럼 돌본 소를 보상 몇 푼에 살처분하실 분 별로 없습니다. 생매장을 지켜본 수의사들도 왜 이 직업을 선택했는지 모르겠다는 말들을 합니다.
참 우리 나라는 단순하고 획일적인 것에 천부적 재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 살처분 방식만을 고집하다가, 어느 정도 백신에 의존하는 것을 보면... 백신 접종이 구제역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가 있을는지, 이제 설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걱정만 태산입니다.
이미 잘난 사람들 다 떠나가고, 나이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죽창 농사 지어서 돈 몇 푼 받고 파는 게 농업인데, 죽자 살자 농사 지어서 제발 먹어달라고 상전에다 빌며 진상하는 꼴같아 저는 개인적으로 농업이 싫습니다. 이번 구제역만 끝나면 정말 끝날까요? 진작 농업을 생각하려면 우리 모두가 다시 근원으로 돌아가는 길 밖에 없을 듯 합니다.
5. 요즘 관심사 혹은 열중하는 일, 그리고 홍성에서의 꿈은요?
물론 지역센터 마을활력소입니다. 지역의 크고작은 다양한 조직들 간의 소통과 연대를 통해 외부의 힘이 아닌 마을 내부의 자원과 동력을 활용하여 지역의 내생적 발전을 통해 지금 여기에 사는 사람들부터 ‘잘 살기’를 시작하여, 외부 사람들이 좋아하는 마을 만들기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마을 구조를 만들어가면서 서로 도움 받고 서로를 살려 나가는 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것이 홍동면에서 장곡면으로, 또 그 이웃 마을로 확산되어지는 현실을 홍성에서 그려보는 소박한 꿈입니다.
6. 대전에 있는 시민운동 선배, 동료, 후배들에게 그리고 풀뿌리에 한 말씀!

사실 저는 이름만 떠올려도 정겹고, 반갑고, 또 고맙고, 송구한 마음이 가득한 일터이자 삶터였습니다.
모처럼 한분 한분의 얼굴이 모두 스쳐지나갑니다. 만나 뵙고 싶고 소주한잔 찐하게 기울이고 싶은 마음 그지 없네요. 연락 먼저 못드리는 성격은 여전히 못 고친 듯 합니다.
그래도 언제나 함께 동지로서, 활동가로서, 인생의 동행자로써 소중한 연이 계속되어지기를 앙망하며, 모든 분들이 지치지 말고 감당할 만큼 즐겁고 신나게 일하시기를 늘 비나리하겠습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만복하세요. 사랑합니다. ^^*
인터뷰/글 김용분(풀뿌리사람들 모심지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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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대형 2011/01/26 15:26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이렇게 소식을 듣네요.
인터뷰어나 상우형이나 옆에서 듣는 것처럼 생생합니다.
새해 더 행복하세요~
Moncler Coats 2011/09/16 16:39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재밌게 읽었습니다. 어제 유미씨가 이런저런 이야기 하고 나니까 풀뿌리에서 오는 뉴스레터에 더 마음이 가네요. 앞으로 회원으로서 더 마음을 쓰겠습니다!